우리나라의 출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이 아닙니다. 두 번에 걸쳐 볼록 올라온 봉우리 구간이 있어요. 첫 번째 봉우리는 이른바 '에코세대'인데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여서 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에코세대 직후에 두 번째 봉우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영역을 '낙타혹 세대'라고 부르는데요, 대략 1990~2000년생 사이로서 대략 50대 세대의 자녀들입니다. 현재 고등학생에서 20대 정도의 나이지요.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일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력 과잉인 것입니다. 낙타혹 세대가 직장을 구하고 나아가 집을 구하고 결혼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리도록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단기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 직무유기 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헬조선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1위가 '정부 불신'(46%)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메르스, 가습기살균제, 현대자동차 안전 문제 등이 일맥상통합니다. 공익을 위한 정부의 규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더욱 약화되고 심지어 타락했습니다. 공적 규율을 회복하고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재장착하려면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정희 정부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이때 '선진화'의 의미를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안전, 공정함, 삶의 질과 같은 새로운 가치로 재정의하는 일종의 사상운동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정치적 반동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국정교과서라는 시대착오적 시도로 인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돌아가는 게 진보라는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정치 의제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로 돌아가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민주/반민주 대립 구도가 재연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경제나 사회 의제에서 현상유지나 복고는 곧 퇴보입니다. 결국 국정교과서 논란은 새삼 범진보세력 전체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냅니다. 지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존 것을 지키자' 내지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표가 북한에 대한 5.24 제재 조치를 당장 해제하자고 주장한 것이 8월 16일, 문재인 대표가 한명숙 의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재심청구를 거론한 것이 8월 26일, 윤후덕 의원이 당 윤리심판원에서 시효가 지나 징계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게 8월 31일 이었습니다. 그러자 안철수 의원은 9월 2일 "혁신은 실패했다"며 세 가지 정풍운동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왜 뒤늦게 혁신에 딴지를 거느냐'고 묻는데, 안철수 의원의 이공계적 시각으로 봤을 때 혁신이 실패했다는 판단은 8월 16일, 26일, 31일에야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비노 의원들의 행태와 겹쳐서 잘 분간되지 않았을 뿐, 안철수 의원은 단순한 '문재인 흔들기'와는 다른 지점을 가리킵니다.
OECD 2위인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 평균치로 낮추면 신규 일자리가 170만개 창출됩니다. 주당 1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만 막아도 신규 일자리가 69만개 창출됩니다. 저는 손학규 전 대표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저녁 있는 삶'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2012년 당 경선에서 제기된 가장 공감가는 의제였습니다. 당시 '저녁 있는 삶'은 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맥락에서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을 뿐, '저녁 있는 삶'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증대와도 직결됩니다.
대부분의 사회 조직은 도련님·공주님형 인재를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채용담당자인데 스펙 좋은 신입을 뽑고 나서 보니 인간형이 도련님·공주님이라는 후문이 들려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국내 대표적 재벌그룹 중 하나인 B그룹의 관계자가 말하길, 그룹 차원에서 다음 두 부류의 사람을 뽑을 때 조심하라는 지침이 있는데 놀랍게도 하나는 강남 출신이고 또하나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겁니다.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주 간단한 답변이 나오더군요.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청년들이 불쌍하니 도와달라'는 식으로는 기성세대가 꿈쩍도 안 합니다. 저는 한국사회의 청년들이 '저출산 망국론'을 장착하고 이와 결합된 애국 담론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여 스스로를 구제하고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한국의 진보정치 전체가 저출산 망국론과 반이민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으로 무장하고 담론과 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출산 문제는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첫번째 순위의 문제이자, 청년세대에게 극히 유리한 의제입니다.
진보는 사상운동 없이 1980년대 사상의 잔여물로 버팁니다. 사실 이 문제는 486만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정의당이든 어디든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범 진보정치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업그레이드 없이 잔존하는 1980년대의 사상은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지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사례를 들어볼까요? 진보 정치인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히 증가하는데 이것을 포착하고 대응하는 데 왜 그토록 느리고 지지부진했을까요? 진보 정치인들은 대형마트가 도시 한복판을 점령하고 골목상권이 속수무책 무너지는 걸 정치적 의제화하는 데 왜 그토록 오래 걸렸을까요?
일베의 '막장성'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면 그 알맹이로 하나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한국 우파의 새로운 사상운동, 즉 뉴라이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성향들이 단순한 문화적 '코드'가 아니라 '사상'의 속성을 가지게 된 것은 뉴라이트를 기반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체계적인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베는 일본의 재특회나 유럽의 네오나치보다는 미국의 티파티와 닮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오프라인 정치와 연관될 잠재력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지금도 많은 10대~20대가 일베를 통해 뉴라이트 사상을 집단학습하고 있습니다.
혁신위가 '답정너'를 넘어서 해야 하는 두번째 일은 당 청년위원회를 해산하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원래 청년위원회가 만 42세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2.8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45세로 상향되었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제가 바로 두 달 전까지 만 45세였는데 저보고 '청년'이라고 부른다면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여의도에 와보니 정치권에 여성이 모자라고, 이공계가 희소하고, 청년은 씨가 마를 지경입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심각합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새누리당보다 높습니다. 당원 평균 연령은 자그마치 50대 후반입니다.
친노는 엄밀한 의미에서 '계파'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노라는 정서공동체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당과 문재인 대표의 행보에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비공식적이고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제2정당에서 가장 큰 상징적 자산을 가진 집단이 나름의 일관적인 라인과 논의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지난 4.29 재보선도 친노 때문에 패배했다고 보는 분들이 계시던데, 저는 오히려 친노가 정상적인 계파로서 구실했다면 지난 4.29 재보선을 적어도 그토록 그르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